2006/05/07

南으로 窓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오늘 동해안의 펜션 사이트들을 검색하다가 문득 김상용의 시가 떠올랐다. 1934년이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그래서 전원의 풍경이 훨씬 가득했을 한반도에 살았을 김상용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지었을까 쉬 이해가 가질 않았었다. 특히 마지막 연의 "왜 사냐건 / 웃지요" 이 부분을 학창시절 배울 때는 다소 냉소적인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요즘 생각되는건 자꾸 전원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양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번도 되뇌인적이 없던 이 김상용의 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이 시의 마지막 연이 얼핏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 자연속에서 복무하며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간 도시에서만 살아왔기에 인간이 자연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군에 있을 때 생각해둔게 있다. 나중에 돈을 좀 모으면 꼭 강원도에 멋진 장원을 건설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사실 어린시절부터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상향 중 하나가 외딴 섬에 나만의 별장을 짓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군 복무를 하며 강원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제 강원도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갖게 된 것이다.

전원생활을 한다는 것.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자급자족을 한다는 것. 참 인간다운 삶이란 생각이 든다. 왜 근대 서양의 계몽사상가들이 이상적인 정치제도를 지방분권에서 찾고 이상적인 경제제도를 중농주의에서 찾았는지 알것 같다. 그래서 문득 욕심을 내게 되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 꼭 강원도에 멋진 집을 짓고 자연속에 은거하며 정직한 삶을 사는 것. 이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어쩌면 실현되기 힘든 커다란 욕심일지 모른다. 그래도 요즘은 그런 전원생활을 동경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후에 자신의 삶을 그렇게 설계하고 있노라고 말했던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요즘, 적어도 30년이 지난 후의 내 모습을 그렇게 그려보고 있다. 나도 남으로 창을 내고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들으면 슬며시 웃어넘길 수 있을까?


언젠가 꼭 다녀온적이 있는 것만 같은 시골 풍경


이런 들판에 누워서 한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 이런 곳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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