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박찬욱 감독의 세번째 복수시리즈를 말하려 한다. 사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봤었지만 오로라공주로 인해 다시 한번 보게 됐다. 박찬욱 감독의 첫번째 복수극 "복수는 나의 것"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각기 개별적으로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이 가하는 복수의 연쇄작용을 다뤘다면, 두번째 복수극 "올드보이"는 복수의 집요함만큼 상처의 크기도 비례하는 점을 보여주었다.(또 가슴뭉클한 교훈도 남겨주었다. 혀 잘못 놀리면 오대수처럼 되는 수가 있다.) 이번 세번째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극의 완결판(?) 답게 철저한 복수로 컨셉을 잡았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15년간 감옥같은 곳에 갇혀졌지만, 우리의 금자씨(이영애)는 13년간을 복역했다. 그것도 역시 백선생(최민식)의 농간에 의해 억울하게 죄를 다 뒤집어 썼다. 그리고 13년간 이를 갈며 교도소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정말 친절한 금자씨가 된다. 왜 그랬을까? 유괴된 아이가 죽게 된 것에 도의적 책임을 느껴서?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전도사에게 "너나 잘하세요"란 명언을 남기는 걸 보면 분명 그건 아니다. 그럼 철저한 복수극을 도와줄 우군을 마련하기 위해? 교도소 수감기간 중 신앙간증을 하는 금자씨의 모습을 보면 그닥 신심깊은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또한 교도소의 마녀로 통하는 악질 제소자에게 소량의 락스를 점진적으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보면, 분명 금자씨는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절한"이란 타이틀을 악독하게 사용한 것이었다.

영화의 전개 과정에 호주로 입양된 딸이야기가 나오지만 전체적인 영화 줄거리상 별로 연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 지독한 복수극의 동력이 되어주었음은 느낄 수 있지만... 영화를 독특하게 만들어 준 요소는 무엇보다 "친절한"이란 금자씨의 별명뿐 아니라 금자씨의 독특한 화장과 의상 등에도 녹아 있다. 금자씨가 20세의 나이로 자수하여 언론에 소개되었을 때부터 타이틀은 "미모의 20세 여성"이었다. 그녀의 의상과 미모를 강조하면서 어떻게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그런 흉악한 일을 저질렀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출소 후 먼저 출감한 동료(?)가 금자씨의 색조화장에 의문을 표시한다. "뭐든지 예뻐야해, 예쁜것이 좋아" 교도소에서 제빵기술을 배운 금자씨가 후진 재료를 가지고 케익을 만든 것에 대해 제빵기술자는 그렇게 평한다. "세상에서 가장 쓴 맛을 본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케익" 금자씨가 가진 독특한 캐릭터는 바로 극단적인 역설의 미학이었던 것이다.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영화의 큰 줄거리는 20세의 금자씨(교도소에 들어온 계기), 교도소의 친절한 금자씨(제소 생활), 출소후의 준비기간, 그리고 복수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 포인트는 교도소의 금자씨와 복수하는 금자씨로 대비할 수 있다. 교도소의 금자씨는 교도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절을 베푸는 금자씨이지만, 출소 후 복수하는 과정에서는 철저한 마녀가 되어 있다. 특히 혼자서 친히 설계하고 디자인한 예쁜 권총으로 혼자 죽이는 것이 아닌, 백선생이 유괴하여 죽인 아이들의 부모들과 사건담당 형사를 입회시킨 후 처절하게 조금씩 복수를 해나가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복수의 절정이다.) 결국 영화는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케익을 먹고 백선생의 재산을 분할하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과연 공권력에 의해 처벌하는 것과 피해자들이 가하는 복수는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공권력에 의해 유괴범이 처벌받는 다고 범죄예방효과가 생겨서 유괴범죄가 발생하지 않거나 줄어든다는 사례도 없고,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범죄자에게 직접 복수를 한다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거나 그들의 응어리진 가슴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렇게 복수에 가담하는 피해자 아이의 부모들 역시 현실문제를 고려하며 백선생의 재산을 넘겨받기 위해 씁쓸하게 금자씨에게 계좌번호를 건낸다. 게임이론에서 복수는 처음에는 가장 강력한 생존모델로 부각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피해를 주면 그만큼 되갚아 줌으로써 자신에게 오는 피해를 줄여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앙갚음 전략으로 나갈 때 관용을 베푸는 전략이 최종적인 생존모델로 살아남았다. 결국 앙갚음의 전략은 끝이 보이지 않는 보복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마지막일지 모를 세번째 복수시리즈는 그렇게 복수의 허망함만을 남긴채, 극단에 선 금자씨의 사연을 소개하는데 그친다. 전작에 비해 시나리오나 극의 전개에 따른 감동은 적은 편이었다. 대신 영화에 대한 극적 흥미를 끄는 요소에 캐릭터의 힘과 함께 극의 서사적 구조(해설이 등장한다.)와 돋보이는 대사, 금자씨에 대한 컨셉이 잘 살려진 OST와 영상미 등이 돋보여서 박찬욱 감독 작품의 명맥을 잇는데 모자람은 없어보인다. 중요한 것은 복수는 정답이 아니란 얘기다. 아무리 기막힌 사연과 울분이 깃들어 있다 하더라도 복수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문제의 본질을 살피고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관용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법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일 뿐이다. 복수는 결국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