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05

오로라공주

301306에서 배우로 활약했던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이라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영화개봉 5개월이 지나서야 감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배우로 활약하며 감독까지 소화해 낸 것은 방은진이 처음일듯.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영화제목도 뽑고 탁월한 현장지휘까지 선보였다고 하니 방은진 감독으로는 성공적인 데뷔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모습은 기존 남성감독들의 영화 전개양상과 별반 차이는 느껴지지 않아 기대에는 못 미쳤다. 어쩌면 방은진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이 아니라 엄정화/문성근이 주연 배우였기에 더 관심이 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내용은 안타깝게도 며칠전 일어난 초등학생 성폭행/살인사건을 연상시켜서 이 시점에서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퍽 가슴아픈 일이다. 기본적인 포맷은 연쇄살인 사건이고 범인이 처음부터 드러나 있는 일련의 복수극이다. 영화 속 주인공 정순정(엄정화)은 5살 짜리 딸을 둔 평범한 직장여성이었고 남편 오성호(문성근)는 현직 경찰이다. 그러던 어느날 딸아이가 실종되고 며칠 후 쓰레기매립장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 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부부는 이혼했고 몇년 후 정순정은 가공할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된다. 그녀는 5차례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살인현장에는 만화속 주인공 캐릭터인 오로라공주 스티커만을 유일한 단서로 남긴다.

기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비슷한 포맷이다. 영화에서 엄정화가 그처럼 비극적으로 딸을 잃은 엄마의 한을 여실히 연기한 것이 놀랍다. 더구나 현직 경찰인 아버지도 자기 딸아이는 구하지 못했으니... 영화 장면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엄정화가 왜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원한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고 결국 관객 모두가 엄정화와 함께 연쇄살인사건의 목격자에서 최후에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범인을 죽이는데 가담하게 만든다. 영화는 그래서 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복수시리즈 세번째 시리즈인 [친절한 금자씨]의 피해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 성폭행/성추행 문제로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가 시끄럽다. 사실 성범죄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아동에 대한 성범죄도 처음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교도소 성추행 사건에 이어 지난 금요일에는 현직 국회의원이 여기자에게 성추행을 한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그 국회의원의 해명성 발언이 더 엽기적이다. 음식점 여주인인줄 알았다니... 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고, 왜 그런 어이없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란 말인가? 여기엔 분명 구조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비슷한 성범죄는 반복될 것이고, 또 그때마다 여론만 분노로 들끓을 것이다.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성인지적 사회환경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특히 남성들에게 양성평등적 사고가 너무 부족한 것 역시 커다란 결함사항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학력의 높낮음이나 경제적인 빈부의 차이가 없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책임있는 교육기관은 물론이고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사회 조직 어디서든 성인지적 교육, 성인지적 정치, 성인지적 기업활동이 마련되고 광범위한 재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누구든 자기 딸아이가 그런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아니면 동아일보 여기자처럼 성추행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결국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만이 분노하고 결국 모든 피해자가 가해자로 나서야 공감대가 더욱 확산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영화가 지적하고 있는 주제는 시사하는 바가 깊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러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생산적이었으면 좋겠다. 전자팔찌다 화학적 거세다 말들이 많다. 미국에서는 1996년 우리와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후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대책이 강화되었다. 일부에서는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아이를 보호해야 할 부모의 의무가 더 강조된 결과였다. 우리도 더 이상 성범죄에 대해 관대해서는 안된다. 아직도 일부 남자 국회의원들은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최연희의원에게 동정을 보낸다고 한다. 현실이 이렇다. 만약 자기 딸이 그 대상이었다면 그래도 동정이 갔을지 의문스럽다.

한가지 영화와 관계는 없지만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기업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일 수도 있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반성해야 할 점일 수도 있겠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미디어의 성상품화. 이점 역시 만연한 성범죄의 한 동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표현의 자유도 좋고, 기업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도 좋다. 하지만 우리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각종 미디어들은 오늘도 남자들의 뇌를 마비시키기 위해 온갖 성상품으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자는 자신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획득해야 할 전리품이 되어가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진보한다고 해서 부디 문명조차 진보한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우리는 그간의 전통적 억제장치들이 모두 해체되고 그 자리를 폭력과 성상품이 자유란 이름으로 넘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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