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male)이란 동물은 어쩔 수가 없다. 날때부터 종족번식의 사명감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성적욕구(sexual desire)의 노예가 된다. 뿐만 아니라 무척 폭력적(violent)이다. 경쟁하는 다른 수컷들과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이고, 암컷(female)에게 번식의 대가로 지불할 음식(meat)을 사냥하기 위해 타고난 본능이다. 그것은 자연선택에 따라 습득된 특기이거나 창조주가 부여한 능력일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사회에서도 남자의 사회적 성 역할은 역시나 강인함을 요구한다. 그런 강인함을 타고났든 성 역할에 따라 강조되었든 현대 사회에서 남자의 이러한 본능은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강한 성적 집착과 폭력성, 오랜 가부장적 질서를 수용해온 결과 생겨난 마초주의(남성중심주의) 등은 여러 진보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남자로서의 강인함을 포기하는 것은 여전히 정신적 거세로 여겨지고 여전히 남자는 남자다울 것을 강요받는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이전 먼 중세사회에서 남성다움은 어떻게 여겨졌을까?
유럽에서 고대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무식한 야만인(게르만족)의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발달한 그리스-로마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이제 겨우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새로운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오랜 부족지배체제를 확장하여 유명한 중세 봉건제도라는 것을 세웠다. 그들은 그야말로 무식한게 힘만 쌘 그런 부류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 초기의 영주나 귀족, 그리고 이들을 무력으로 수호하는 기사들이란 오늘날 생각되는 그런 멋진 신사들이 아니었다. 문자를 몰랐고 개종은 하였지만 로마카톨릭의 정신적 지위를 인정한 것에 불과했기에, 그들은 여전히 여자들을 강간하고 다녔고 힘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였으며, 평화시에는 자신들끼리 결투나 마상시합(tournament)을 통해 힘의 우월함을 겨루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은 이들을 교화하기로 작정하고 법과 관례를 중시할 것과 종교적 관용 및 여자를 보호할 것을 사명으로 삼도록 가르쳤고, 또한 피를 흘리는 결투나 시합을 금지시켰다. 로마제국은 무너졌지만 로마의 높은 문명을 간직하고 있던 카톨릭이 그나마 중세의 기득권 층에게 옳은 일을 한게 있다면 바로 이 귀족과 기사집단을 종교적으로 교화해 냈던 일일 것이다.
이런 서양의 전통이 기사도를 탄생시켰고 중세에는 이러한 기사들의 모범적인 일대기를 다룬 기사도 문학이 유일한 문학으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영주에 의해 기사로 서임받게 되면 그 기사는 평생 한 여자만을 보호하고 사랑할 것이 강조되었다.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18~20세의 젊은 기사들은 그래서 이상적인 여성-대체로 영주의 부인-을 정하고 그 여자를 위하여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것이 큰 명예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중세 기사도문학에서 엿보이듯 여성존중의 기풍으로 굳어졌고 궁정의 사랑을 테마로 삼은 이야기들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 진정한 몇몇 영웅적인 기사들은 실제로 이러한 명예로운 일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 여성존중의 기풍이 상류층에 공고해져 여성의 지위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중세가 끝나가는 13세기 초에는 영주의 여자상속자에 대해서도 신하로서의 예를 갖추게 되었다.(유럽에서 여왕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기사도의 영향이 지대했다.)
유럽의 중세를 연 이들 기사들은 사실 원시적인 남성성을 그대로 간직한 거칠고 사나운 기질을 지닌 자들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노력으로 무장하지 않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며, 일요일이나 주된 축제일에는 전투를 멈추었고(Truce of God), 여자와 상인, 농민, 성직자 등 비전투원에 대한 공격도 멈추게 되었다. 거칠고 사나웠던 전사적 기질이 기사도의 성립으로 다듬어지고 노약자에 대한 동정과 보호가 용맹과 함께 명예로 간주되며 유럽 지배층의 생활윤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남성성의 교화에 종교가 그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였고 동서양의 모든 질서의 근간에는 이처럼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21세기. 종교는 과거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본주의의 전도사인 미디어가 차지해 버렸다. 그 미디어들은 끊임없이 남성의 본능을 일깨우며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성에 본질적으로 약한 남성성,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이 무차별로 공격받고 자극받는다. 과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남성을 교화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또한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구축된 세계체제를 허물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 대안이 분명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기사도가 장려되었던 사회에서 여자는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존중의 기풍은 약자에 대한 동정과 보호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여전히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경제적 지위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현저히 낮다.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러한 차별을 무릎쓰고 활약하는 여성들이 미디어에 회자되어 주목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 무엇보다 여성들 자신이 그간 구축되어온 로고스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체제를 깨뜨려야 할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더 이상 기만적인 여성존중의 기풍이 아닌 여성을 여성으로서 인식하고 대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상을 갖도록 남자들은 새롭게 교화되어야 마땅하다. 남자가 이를 스스로 실현해 내리라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사랑의 힘은 일시적일 뿐이며 본능을 통제하고 조절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화만이 대안이다.
21세기 현대사회를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물론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도 어렵다. 점차 진보해가는 사회문화의 제 현상처럼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 성 역할은 이제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그 본질적인 면이 안고 있는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이 그간의 작용에 반작용을 더할 때이다. 물론 이러한 점진적 운동(movement)은 단기간에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닐 뿐더러, 우리는 그 명확한 미래상을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남성 본질의 문제점과 그 한계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적어도 여성이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여성이 원하는 남성상일 것이고 마땅히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성평등의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남자들은 한없이 여자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What women want? 그 진정한 대답이 바로 미래 남성상의 명확한 성 역할이라 단정해 본다. 나는 오늘도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난 죽을 때까지 여성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소통은 꿈꾼다. 그것이 오늘도 이 고민의 해답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확신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