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10

비트겐 공식 블로그를 오픈합니다.

인터넷과 홈페이지, 블로그의 역사



New Media-Internet의 출현
1996년 이 땅에 인터넷(Internet)이라는 새로운 뉴미디어(New Media)가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HTML(Hyper-Text Makeup Language)언어를 배우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새로운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로 부각되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Windosw 95는 자사의 Internet Explorer를 끼워 팔면서 재빠르게 웹 플랫폼(Web Platform) 역시 장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서 규정한 Telnet과 FTP(File Transper Protocol), Gopher, Usenet 정도의 Text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서비스 방식이 사용되어졌는데, NCSA에서 개발한 모자이크(Mosaic) 브라우저(Browser)의 출현으로 인터넷에서도 드디어 멀티미디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Multimedia Graphic User Interface)가 가능해 졌습니다. 흔히들 이 모자이크 브라우저에 의해 사용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World Wide Web이라 부르며 근래에는 인터넷이라는 표현이 이 WWW 서비스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첫 Homepage 개설
1996년만 해도 한국의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는 대형 PC통신 사업자가 유선전화망을 통해 운영하는 대형BBS(Bulletin Board System)를 중심으로 통신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당시에는 대형 PC통신 사업자가 ISP(Internet Server Provider)업을 주도하고 있어서, 자사의 PC통신 서비스에 PPP(Point to Point Protocol)나 SLIP(Serial Line Internet Protocol)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고 당시 모뎀(Modem:Modulater Demodulater)을 사용한 회선의 속도가 14.4~56Kbps에 불과하였기에 인터넷 사용 인구는 PC통신 사용자 중의 일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인터넷 접속 환경이 1999년부터 갑작스런 변화를 맞이합니다. 첫째 완벽한 GUI환경을 제공하던 MS의 Windows 95가 그 불안한 시스템을 일대 개선한 Windows 98을 내놓았고, 둘째 게임 Diablo로 유명한 미국 Blizard사가 내놓은 StarCraft라는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이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열렬한 인기를 얻어 전국 각지에 T1급 회선(1,544Kbps)이 설치된 PC방이 성업하게 되었으며, 셋째 빠른 IMF(International Moneytry Fund)체제 탈출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가 한국의 IT(Information Technology)산업을 미래산업의 대안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대대적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전국에 초고속인터넷통신망이 빠른속도로 보급되었던 점 등이 원인이 되어 1999년부터 대대적인 인터넷 사용 환경이 전국적으로 구축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점차적인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저 역시 그간 대학 동아리에서 후배들과 함께 공부했던 HTML 언어를 활용하여 HiTEL(5M)과 두루넷(50M)에서 제공하는 개인 홈페이지 공간을 이용하여 첫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Netscape와 Explorer
한국에서 1999년 인터넷 이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갈 즈음에도 여전히 Web Browser 시장은 NCSA사의 모자이크 개발자들이 세운 Netcape Communications Corporation의 Netcape Navigater가 우세하였습니다. Netscape Communications Corporation은 AOL(America Online)사와 전략적 제휴로 Instant Messenger를 보급하였고 후에 Real Networks사의 Real Player도 함께 보급하였습니다. 물론 한국의 ISP 업체는 대체적으로 Netscape Communications Corporation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Netscape Navigater를 사용하여 WWW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였고, 몇몇 신규 ISP업체(SK텔레콤의 Netsgo, LG인터넷의 Channel-I 등)는 아예 자체 전용 Browser를 개발하여 PPP 환경 접속에서부터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지원하는 형태를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홈페이지는 주로 Netscape Navigater 4.0 Browser에 잘 보여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접어들면서 점차 운영체제가 MS의 Windows 98로 바뀌어가면서 Internet Explorer와 MSN Messenger, Media Player가 기존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꼭 국산 사무자동화 Program이던 한컴Office 97이 MS-Office 97에 시장을 내주며 한글 97 워드프로세서 마저 위기를 맞았던 경우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두번째 홈페이지 개설
2001년 당시 저는 2년간의 행정조교 업무를 끝마치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4학기)를 다니면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HiTEL 대중음악평론동호회 대표시삽 임기(2000/01/01~2000/12/31)도 끝이 나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당시 유행하던 Internet Online Game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우연히도 X2game(CCR)의 Fortress 2 Blue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실상 제대로 된 컨텐츠가 하나도 없던 제 첫번째 홈페이지는 간단한 제 소개와 게시판 하나를 갖춘 Format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Fortress 게임을 즐기며 만든 길드의 커뮤니티가 필요한 시점에서 제가 길드 마스터였던 관계로 길드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Daum Communications에서 제공하는 Cyber Cafe가 새로운 인터넷 커뮤니티 체제로 각광받고 있었고, ID만 존재하던 가상공간에 아바타 시스템을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있던 Freechal.com의 커뮤니티도 기존 대형PC통신의 사양길로 인해 대안 커뮤니티로 등장했지만, 이들 커뮤니티가 기존 PC통신 동호회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서비스 제공사에 회원으로 가입을 해야만 활동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였기에 자체 커뮤니티를 별도의 홈페이지 공간으로 꾸며야 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PC통신 시절이야 유선전화망을 통해 서비스 제공을 하는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러한 회원 가입이 커뮤니티의 확대와 Open Mind 지향성에 장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커뮤니티는 1년간 활발히 가동되었지만 제가 2002년 게임을 그만 두고 논문작성에 매진하면서 역시 폐쇄되었습니다.

음악방송과 세이클럽
2001년 HiTEL 대중음악평론동호회에서 매주 정기채팅이 개최될 때마다 회원간의 음악감상을 목적으로 Winamp를 이용한 음악방송이 1주일에 1회 실시되었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음악을 실시간으로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되었습니다. 당시 Winamp를 이용한 음악방송은 자체 IP를 활용하여 방송을 하는 컴퓨터가 서버의 역할도 수행하였기에 고음질의 방송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Inlive.co.kr에서 Winamp 방송서버를 무료로 제공하였기에 inlive 서버를 이용한 음악방송이 부정기적으로 취미삼아 이루어졌고, Buddy Buddy 메신저 채팅방/소리바다 채팅방/SkyLove 채팅 사이트 등의 채팅참가자가 주 청취자였습니다. 새로운 음악방송 채팅문화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순간 채팅 전문 사이트였던 Sayclub에서 음악방송을 지원하는 채팅 인터페이스를 선보였고, 저는 2001년 10월부터 정기적인 음악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 2002년 5월 새로운 컴퓨터를 마련하면서 방송용 HeadPhone과 Mic 및 Stereo Mixing이 가능한 Creative사의 SoundBlaster SoundCard도 마련하였고, 2002년 6월에는 비트겐 클럽이 Open되어 새로운 커뮤니티 활동도 시작되었습니다.(2002년부터 그간 사용되어 오던 넥스트맨이라는 닉네임 대신 비트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방송시간도 매일 밤 12시~2시까지 매일 2시간씩 정기적으로 방송을 진행하였고 방송음질도 128Kbps에 44.1Mhz의 CD음질 수준을 갖추었으며, 방송 시작을 알리는 Signal Music도 준비하여 본격적인 음악방송의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당시 방송을 위해 준비된 음원의 분량만 80GB가 넘었습니다.) 이후 비트겐의 음악방송은 제가 군 입대 관계로 2003년 1월 종료되었습니다.

세번째 홈페이지 개설(http://wittgen.wo.ro)
2003년 4월 군 입대를 한달 남짓 남겨두고 20대를 PC통신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보낸 지난 10년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5월 포항제철에서 만든 Pos-Serve로 첫 PC통신 활동을 시작한지 만으로 10년이 지난 것이었습니다. 특히 1994~1998년까지 4년간 활동했던 한국통신 미래텔(前 HiTEL-Pop)의 컴퓨터음악동호회와, 1999~2001년까지 활동했던 HiTEL 대중음악평론동호회 활동으로 남겨진 수많은 게시물과 커뮤니티 활동으로 알게 된 많은 회원들은 이제 온데간데 없이 잊혀져 버린 바 되어 가슴 아팠습니다. Sayclub에서 음악방송으로 만난 많은 회원들 역시 세이클럽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정기적인 음악방송이 이뤄지지 않자 금새 많은 회원들이 클럽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군에 있는 동안이라도 그간 Online에서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 제가 접속하지 못해도 저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세번째 홈페이지를 급조하게 되었습니다. 당초 Master Plan은 그간 제가 작성한 모든 게시물과 보고서, 기고문, 학술논문 등을 정리해서 디렉토리 별로 DB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10년간 만들어진 그 많은 내용을 정리하여 게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홈페이지 디자인부터 컨텐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 없이 미완성의 홈페이지를 마련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의 군 생활 결과
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마다 Sayclub의 비트겐 클럽과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비트겐도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입대 후 1년도 되지 않은 2004년 4월에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제 Desktop Computer의 Master HDD에는 Windows XP와 각종 Application Program이 설치되어 있었고, Slave HDD에는 각종 음원과 그간 작성된 글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 Secondary HDD가 고장이 나서 그만 모든 Data가 복원이 불가능해 진 것이었습니다. 군에서 여동생 결혼식을 이유로 휴가를 나왔다가 그 사실을 알고 상심해 했던 나날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렇게도 평소에 Backup의 중요성을 타인에게 강조하며 살아온 제가 군에 가기 전에 CD-RW Drive가 고장이 나서 Backup을 하지 않고 입대를 했던 것이 이런 막대한 후회를 불러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결국 군대를 전역하고 돌아와서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Renewal하고 음악방송을 제개하겠다던 입대 전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Backup한 자료는 전혀 가공이 되지 않은 2001년 Data가 마지막이었고 Backup되어 있는 음원 역시 40GB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은 그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군에서 시작한 NCSoft의 Lineage II를 즐기며 보내고 말았습니다.

달라진 인터넷 PlatForm
군을 마치고 2년간 인터넷 동향에 어두워 있던 저는 역시나 또 MMORPG(Messively Multiple Online Role Playing Game)를 즐기느라 8개월을 보내느라 그간 변화한 인터넷 웹 Platform에 무지하였습니다. 특히 군에 있던 시절 Cyworld의 미니홈피와 Naver의 Blog가 왜 인기를 얻고 있는지, 왜 사람들이 댓글(Reply)과 먼댓글(Track Back)에 그리 집착하는지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웹 Platform은 대형 포털 사이트와 거대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정보의 테두리 속에 사람들이 묶여 있었지만, 이제는 기존의 커뮤니티가 지닌 원심력은 사라지고 모든 인터넷 유저가 자신의 개성을 쉽고 강하게 반영할 수 있고 정보가 양방향에서 훨씬 교감이 쉬운 Blog 방식으로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CUG(Close User Group) 방식의 기존 미니 홈페이지는 곧 한계를 드러낼 것입니다. 기존 미니홈피보다 Blog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미기엔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의 공유나 검색 면에서 훨씬 접근성이 뛰어나고 Open Mind를 지향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특히 최근 점차 확대되고 있는 Track Back 기능은 이러한 Blog의 미래지향적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확한 예입니다.

대세는 Open Mind다.
MS는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매출 1위의 기업이지만, 지금 그 아성을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유명한 Google.com에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는 MS의 몇몇 경영진이 예측했던 바이기도 했던 PC위주의 Platform이 웹 위주의 Platform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과거 MS가 해왔던 독점적 지위를 최근 Google.com이 물려받고 있습니다. Google.com은 이제 자사의 Google DeskTool과 검색엔진이 장착된 Browser를 세계적인 Computer제조사와 제휴하여 끼워 넣기로 했습니다. PC사용자들이 컴퓨터에 한번 설치된 프로그램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며, 과거 MS가 사용했던 방법을 Google.com도 동일하게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Google.com은 특히 그 검색엔진 Main 화면에 광고하나 찾아 볼 수 없듯이 투명한 경영이념과 Open Mind로 열렬한 지지자를 갖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이는 한국의 토종 포털업체들도 고민해야 할 사안입니다. 아직 국내에서 Google.com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지만 Google.com의 검색 기술과 그 능력을 맛본 이용자는 다른 검색엔진을 결코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그 진가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갈수록 각종 컨텐츠가 유료화되고 각종 포털의 다양한 서비스가 유료화하거나 각종 스폰서 광고로 검색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Google.com의 경영이념은 이러한 한국 시장의 편파성, 부정직함을 일거에 무너뜨리고도 남을 위력을 담고 있습니다.

BLOG를 OPEN하며...
온갖 검색엔진을 동원해도 비트겐 홈페이지는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Blog에 기록된 Post는 곧바로 다음날 검색엔진에서 검색이 가능합니다.(물론 비공개로 Post를 작성하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국내의 검색엔진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등록하려면 수수료를 지불하거나 상당한 분량이나 유용한 컨텐츠를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Blog는 이러한 기준이 없습니다. 특히 자사의 Blog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우선하여 검색을 합니다. 또한 Blog의 Post나 Track Back기능은 표준 Protocol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이트의 Blogger가 이용하는데도 제약이 없습니다. 결국 대세는 Open Mind이고, 개인 HomePage가 아닌 Blog의 Post이며, 자기 사이트의 회원에게만 열려있는 곳이 아니라 모든 인터넷 이용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국 이러한 인식을 통해 Google.com이 제공하는 Blog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http://wittgen.blogspot.com이 저의 공식 Blog 주소가 될 것입니다. 기존의 홈페이지는 향후 좀더 정보를 가공하고 컨텐츠를 다듬어 공식 홈페이지로서의 위상에 걸 맞게 운영할 계획이며, 가급적 커뮤니티의 형식을 취할 계획입니다. 이제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이 또는 저를 잘 모르시는 많은 분들이 이 비트겐 블로그를 통해 저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트겐 블로그를 통해 좀더 유용한 정보를 보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 열심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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